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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전 떠들기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새들이 있지만 이 영화의 제목과 같은 새삼 신박한 새가 있다. 바로 벌새, 공룡의 일종인 수각류로 우리는 가장 작은 새로 알고 있다. 신기한 건 도저히 날 수 없을 것처럼 생겼지만 그 어떤 동물도 따라 할 수 없는 비행능력을 가지고 있다. 초당 55번에 달 할 정도로 엄청난 속도를 가지며 날갯짓을 하고 이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비행을 가능하게 해 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런 엄청난 움직임을 하면서 좌우의 날개 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관절도 움직여 앞, 뒤 어느 곳으로도 비행이 가능하다. 그야말로 신비스러운 존재이다.
이 영화는 너무나 평범하면서도 동시에 벌새와 같이 신비함을 가진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았다. 작은 몸짓에비해 너무나 큰 세상에 던져지듯 나타난 소녀는 자신의 세상에서 너무나 큰일들을 당한다. 여러 가지 고난에 휩싸이고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괴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자신의 세상에 비교할 수도 없는 더 큰 충격들이 다가오고 마침내 소녀는 작은 자신의 세상이 아닌 진정한 세계를 깨닫는다. 한 소녀의 성장기이자 새로운 세상으로의 날갯짓을 보여준 영화 <벌새>를 리뷰해 본다.

영화 정보
벌새(humming bird)
드라마/한국/138분
15세 이상 관람가
2019년 개봉

시놉시스
간략한 영화 줄거리
-끊임없이 펼쳐지는 고난과 날갯짓
1994년, 중학교 2학년의 김은희(박지후)는 평범한 듯 독특한 듯 자신만의 세상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떡집을 하는 아버지와 어딘가 어두움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자식들에게 헌신적인 어머니, 고등학교에 다니는 불량스러운 언니와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오빠까지 하루하루가 다채로운 일들로 정신이 없다.
남자친구는 믿음을 주고 자신의 첫 키스까지 주었건만 다른 여자애와 바람을 피우고 자신의 아버지 또한 춤바람이 난다. 어머니는 자신을 아끼던 외삼촌이 병으로 돌아가시고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자신의 언니는 그저 일탈만을 일삼는다. 자신에게 남은 것은 친구 지숙이지만 함께 도둑질을 하던 날 자신을 배신하고 사과도 없이 도망친다. 고통 속에서 은희는 새로 온 한문학원의 선생님 영지(김새벽)에게 의지하고 영지는 진정한 스승이자 친구로서 은희를 달래준다. 그러던 어느 날 영지는 은희에게 말도 없이 떠나게 되고 은희는 얼마 후 자신에게 온 영지의 소포를 보고 기쁜 마음에 그녀를 만나러 가는데..

결말 및 해석, 후기
영지는 개인적인 일로 학원을 그만두었고 은희에게 모든 걸 얘기해 준다는 소포에 그녀의 꿈을 응원하는 스케치북을 보냈지만 그 해 10월에 생긴 성수대교 붕괴사건으로 죽게 된다. 은희는 영지를 찾아가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소풍날 영지가 보내준 편지를 읽으며 영화는 결말을 맺는다.

요즘 유난히도 단편영화나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이 많다. 1차원적인 액션영화나 로맨스물들에 비해 생각할 것도 많고 리뷰할 것도 많아서일까. 이 영화도 그러한 하나의 생각으로 보게 되었다. 영화에 대해 간략한 해석을 하면 다음과 같다. 은희라는 캐릭터는 그야말로 작은 벌새이다. 벌새 중에서도 가장 작아서 기적 같은 날갯짓을 할 힘도 없어 보이는.. 그러나 은희는 영지를 만나게 되고 더 넓은 세상과 자신이 바라보는 것들에 대해 날갯짓을 하기 시작한다.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相識滿天下 知心能機人).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까지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영지의 한문 수업 중
친구와 남자친구, 그리고 가족들까지 모두 자신의 얼굴을 알고 자신을 사랑해 주고 아껴준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을 아는 사람을 얼마나 있을까. 더욱 신기한 것은 영지조차도 은희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그저 받아들여주는 것뿐, 특히나 은희와 다툰 친구가 다시 한문학원에 나왔을 때 영지는 앞에 앉은 소녀 둘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그러나 그 노래는 두 소녀를 위해서이지만 온전히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난 내가 싫어질 때, 그 마음을 들여다봐. 아 내가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없구나.
영지가 은희에게
영지는 은희를 위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녀 자신도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위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기에 오히려 은희는 더욱 큰 위로를 받고 영지를 따르게 된다. 자신을 존중해 주며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고 온전히 그녀를 받아들여주기 때문에. 특히나 모두가 은희를 야, 너, 심지어는 년이라 부르지만 영지는 은희를 은희라는 이름으로 불러준다. 자신도 스스로를 모르는 힘들고 고단한 삶의 날갯짓을 영지만이 온전히 받아준다.

은희의 삶은 그야말로 나는 거 하나로 모든 걸 집중해야 한다. 벌새는 날아서 먹고살기 위하여 매일 자신의 체중보다 더 나가는 양의 음식을 먹고 소화시킨다. 이러한 장면은 은희가 허겁지겁 엄마가 해준 전을 먹는 장면에 잘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은희는 두려워한다.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은희의 편지에 쓰인 말
자신의 날갯짓이 시간이 지나면 그 의미를 찾을지 궁금해한다. 버겁고 두려운 세상에서 그저 날갯짓 하나에 모든 바람과 고난들을 버텨내고 있지만 은희에게는 희망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한다 했던 남자친구는 바람을 피우고 어머니에게 끌려가 그녀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한다 말했던 후배는 학기가 바뀌자 마음을 접는다. 의지할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바람과 외삼촌의 죽음으로 그저 목적 없이 공허히 살아간다. 심지어는 우연히 마주한 엄마를 목놓아 부르지만 어딘가 홀린 듯 딸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다. 은희는 그저 두렵고 고통스럽기만 하다.

이 영화는 두 개의 책이 나온다. 바로 스탕달의 <적 과 흑>그리고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 그 삶의 세 이야기>, 후자의 책은 감독의 말을 빌리면 영지의 삶을 나타낸다. 1994년 가부장적인 사회에 여성들의 인권이 낮은 시절, 당당히 서울대에 입학하고 담배를 피운다. 어딘가 자유스러운 그녀의 모습은 크눌프라는 책의 인물과 같이 비유된다. 전자의 책 <적 과 흑>은 은희의 모습을 보여준다. 외면적인 고통으로 내면에 폭풍이 몰아치는 괴로움을 겪는 모습을 같은 선상에 놓기 위하였음이라.


이외에도 다양한 소재들이 영화를 비춘다. 특히나 은희의 혹은 그녀의 문제들을 나타낸다. 처음 작은 혹으로 인해 그녀는 동네 병원에 가서 간단히 그 혹을 떼어낸다. 너무나 간단하게 제거된 혹에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 그러나 그렇게 끝난 줄 알았던 혹은 다시금 더욱 커져 그녀의 삶으로 들이닥친다. 안면마비가 올 수도 있는 수술, 그러나 그녀는 이 혹이라는 문제를 통해 오히려 위로받는다. 그녀를 괴롭게 했던 아버지의 무관심이 사실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었음을 알게 된다.
“저기요... 저기요... 내 혹 어딨 어요?”
수술에서 깨어난 은희의 대사
은희는 아마도 매우 당황했을 것이다. 자신의 날갯짓을 방해하려고 나타난 혹이 오히려 자신을 성장시켜 주고 너무도 간단하게 사라져 버렸으니까. 아마도 혹을 찾는 은희의 마음은 해방감과 집착했던 문제들이 사실은 간단히 사라져 버린 것이 믿어지지 않아서 그랬던 게 아닐까.



결국 은희는 깨닫게 된다. 세상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고 자신이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이 무수히 반복되고 또 자신을 덮쳐온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희는 영지의 침대에 앉아 손가락을 헤아린다.
아무것도 못할 곳 같아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더라
은희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못할 괴로운 일들이 다가오고 다시금 두려움에 빠지고 내면적 괴로움에 빠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고 다시금 날갯짓을 시작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열어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세상에는 무수한 일들이 일어나고 그것이 나쁜 것이던 좋은 것이던 그녀가 날갯짓하며 살아가는 세상은 신기하고 아름다움을.

다소 난잡해서 죄송하지만 영화의 해석은 이쯤 해두고 이 영화가 더욱 의미 깊게 느껴진 건 요즘의 말도 안 되는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이야기들이 실제 했던 세상을 보여준 것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너무나 쉽게 폭력을 사용하는 오빠의 모습과 똑똑했음에도 공부를 더 하지 못했던 은희 어머니의 이야기까지. 진정으로 여성들이 고통받았던 시대의 모습을 요즘 사람들에게 와닿게 보여준 게 아니었을까.
특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지의 도움으로 이러한 것들을 이겨내는 은희의 모습이나 은희가 전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금 웃음 짓는 어머니의 모습은 우리가 듣고 있는 말도 안 되는 거짓된 이야기들에 고통받고 그저 요구만 하는 특정 집단들과 비교하여 더욱 위대하게 그려진다.

한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벌새의 날갯짓과 같은 삶과 언제나 시련과 고통 그리고 기쁨과 사랑을 전해주는 세상의 모습이 어쩌면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지? 그래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마. 함부로 동정할 수 없어. 알 수 없잖아.
재개발촌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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