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 자네도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이 죽일 수 있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
리뷰 들어가기- 영화 박열 중에서
사실 이렇게 멋진 의미로 시작할 만한 내용의 영화는 아니지만 인간의 본능을 어찌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는 같아 영화 박열의 대사로 시작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그동안 봐왔던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과는 같으면서도 확실히 더 진한 느낌의 작품이다.
어딘가 최근작들보다 더 날 것의 느낌이 강하고 인간의 심리를 더욱 강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홍상수 감독의 최근 영화들은 청소년 관람불가이지만 성적인 장면이 하나도 없는데 이 작품은 굉장히 노골적으로 비춘다. 같은 감독의 작품이 이렇게도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고 변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작품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리뷰해 본다.
영화 정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드라마/한국/87분
청소년 관람불가
2004년 개봉
감독: 홍상수
주연: 유지태, 성현아, 김태우
줄거리
선화(성현아 분)는 헌준(김태우 분)의 연인이었고, 문호(유지태 분)는 헌준의 후배였다.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선화에 대한 마음이 소원해진 헌준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고. 선배의 연인인 선화를 짝사랑해 온 문호는 헌준의 유학을 계기로 그녀와 연인이 된다.
그러나 결국 문호도 선화와 헤어지게 되고, 세 남녀는 연락이 끊긴 채 각자의 삶을 살아갔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 선후배 문호와 헌준. 선배인 헌준은 유학을 다녀온 예비 영화감독이 되었고, 후배인 문호는 아름다운 부인과 딸을 둔 서울 유명 대학 강사가 되었다. 두 남자는 동네 중국집에서 낮술을 마시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중, 선화가 떠오른다. 취기가 적당히 오른 둘 사이에 그들의 연인이었던 선화가 갑자기 화제가 되고, 그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남아있는 선화와의 추억에 잠긴다.
낮술에 힘을 얻은 두 남자는 그래도 선화가 반겨줄 거라는 기대감과 내심 불안감을 갖고 선화를 만나기 위해 부천으로 떠나는 돌발행동을 하게 된다. 막상 선화의 얼굴을 본 두 남자는 ‘7년 전 선화’를 되찾고 싶다는 욕망이 일고 선화와 오직 단둘이 있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선화는 이런 두 남자의 행동을 일단 즐겨보기로 하는데. 7년 만에 다시 만난 선화는 과연 두 남자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결말&해석
헌준과 문호 그리고 선화는 함께 약수터를 가다가 문호가 제자들을 만나서 따로 가게 되고 문호는 제자들과 술자리를 간다. 헌준은 선화와 함께 약수터를 다녀오지만 선화에게 불만을 표출하며 떠나버린다. 한편 문호는 제자들과 술을 마시다 불편한 상황이 생겨 나와버리지만 자기를 따라온 여제자와 여관에 간다. 그러다 갑자기 다른 남자 제자의 방해로 학교에 소문이 날 것을 두려워하며 여제자를 보내고 후회하며 영화는 결말을 맺는다.
이상한 스토리에 이상한 결말이라 부를 수 있겠지만 전 남자친구와 전 여자친구와 관련한 인터넷썰들을 종종 접했다 보니 아 이 영화가 마냥 이상하지만은 않구나라는 걸 느낀다. 프라이머리 가수의 자니?라는 곡에서도 그렇고 다는 아니겠지만 많은 수의 사람이 과거의 애인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더 중요한 건 그 그리움의 바탕이다. 그게 이 영화의 핵심 아닐까. 바로 성적인 욕망, 앞서 리뷰했던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은 청소년 관람불가이지만 직접적으로 성적인 장면이 나온 것은 없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노골적으로 비춰준다. 이 작품(2004년 작) 인간의 상상이 더 뛰어남을 이해하고 일부러 컷신에 넣지 않은 건지 아니면 단순히 필요하지 않다고 느낀 건지 모르겠지만 추후 작품에서는 그런 장면이 없다.
아무튼 이러한 욕망은 인간의 본성 그중에서도 사회적으로 밑바닥의 본성을 비춘다. 문호와 헌준 모두가 중국집에서 각자 여종업원에게 자신의 직업을 말하며 수작을 부리는 장면이나 막상 선화가 그리워 왔지만 갈 때는 두려워 같이 가자 해놓고 선화를 만나니 헌준은 문호를 집에 보내려 하고 문호는 헌준에게 술을 먹인다. 선화와 단둘의 시간을 보내려 하는 뻔한 욕망을 비춘다.
그렇다고 이는 남자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여자들도 관계를 원한다. 다만 그것은 심리적 안정을 더 추구하는 느낌. 선화도 그렇고 여제자도 그렇고 공통적으로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일을 진행한다. 자신이 좋아하던 또는 좋아했던 이와 정신적으로 가까이 있기 위한 일종의 수단으로 여겨진다. 다만 이 작품에 나오는 남자들은 온전히 관계 자체가 목적이 된다.
이 작품이 재밌는 점은 캐릭터들이다. 헌준은 찌질하다. 뻔히 보이는 수작들이나 마음들을 감추려 한다. 좋지 못한 일을 당하고 온 선화의 몸을 씻기고 관계를 가지며 자신이 선화를 깨끗하게 해 주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사실은 그냥 더러운 욕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선화와 함께 방에 들어가지만 잠을 이루지 않고 새벽에 문호와의 일을 알고 있음에도 직접적으로 나타내지 않고 계속 선화를 힘겹게 한다. 그러고는 떠나버린다. 자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찌질한 남자의 표본을 보여준다. 아 그리고 심지어 선화에게 잘못했다며 스스로 담뱃불을 지지려 하지만 결국 무서워 못하고 남에게 부탁하다가 못하게 하자 안심하는 장면도 이를 보여준다.
문호는 겉으로 드러나지만 안 그런척하는 찌질이 헌준과는 다르다. 때로는 강하게 표현도 하고 여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도 해준다. 그러나 너무 성적인 욕망이 넘치는 캐릭터다. 겉으로는 강한 척 부드러운척하지만 이는 모두가 하나의 목표만을 위한 것. 그저 욕망의 해소를 원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두 캐릭터 모두 욕망을 그저 결과로 나타내기를 원하기에 둘 모두 허무한 결말을 맞이한다. 이 허무가 바로 작품의 제목 <여자가 남자의 미래다>이 나온 이유지 않을까. 허무한 욕망만 쫓는 남자보다는 과정으로 생각하는 여자가 남자들이 쫓아야 할 미래이기에.
선화 씨 잘 살고 있는 건가?
남자 둘보다는 잘 사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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