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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69세 리뷰 결말 해석 당신의 늙음에는 빛이 있나요

by YB+ 2024.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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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ew

영화 보기 전 떠들기

오늘 너무나 잔인한 영화를 한 편 보았다. 좀비물도 닭발 뜯으며 볼 정도로 잔인한걸 잘 보는 편인데도 이 영화는 시작부터 그 마지막 순간까지 순간순간 좋지 않은 말이 나올 만큼 기분 나쁘고 잔인하며 또 냉혹했다. 이 영화는 노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늙음이란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또 우리 사회가 그것들을 늙음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자극적인걸 쫓는 요즘 사회에서 이 영화는 우리가 진정으로 주목해야할 잔인한 사건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비하는지 보여준다. 그야말로 소비이다. 타인의 고통과 괴로움들은 그저 나의 유희와 일시적 위로를 위해 소비된다. 자신의 괴로움을 해결해야 할 것들은 오히려 자신을 갉아먹고 결국에는 괴로움에 가득 찬 자신만 남는다. 실화 사건은 어두움으로 끝나고 이 영화는 어두움에 자그마한 빛을 뿌리며 결말을 맺는다. 영화 <69세>를 리뷰해 본다.

영화 정보

69세

드라마/한국/100분

15세 관람가

2020년 개봉

시놉시스

간략한 줄거리

 

-늙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간병인으로 일하며 나이 든 여자 효정은 좋지 않은 무릎으로 인해 물리치료를 받게 된다. 어딘가 이상한 질문을 하는 간호조무사 남성, 그리고 효정은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듯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와 동거하는 시인이자 현 책방주인 남동인은 아파하는 그녀를 걱정하는데 화장실에서 나오자 그녀는 경찰서에 같이 가줄 수 있는지 묻는다. 경찰서에 도착한 효정은 자신이 간호조무사 이중호에게 강간당했으므로 고소한다. 그리고 이중호는 둘이 그날 그 당시에 관계를 맺었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합의된 것이며 강제로 관계를 맺었다는 어떠한 명백한 증거가 없는 상황, 모든 정황은 그의

범행을 확실하게 비추지만 시간이 가도 늙은 여자와 젊은 남성의 관계에서 어떠한 강제성을 입증하지 못한다며 계속해서 고소는 기각당한다. 결국 효정은 동인의 집에서 나오고 자신의 아픔이 있던 곳까지 돌아가고 계속해서 주위 사람들의 폭언으로 인해 상처받고 괴로워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삶과 고통 속에서 그녀는 한줄기 빛을 생각하기 시작하는데..

결말 및 해석, 실화

내 맘대로 떠들기

-빛이 비칠까

효정은 고심 끝에 이중호의 집에 찾아가 사실관계를 적어놓은 고발장을 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진심이 담긴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그 이야기를 복사하여 옥상에 가서 뿌리며 영화는 결말을 맺는다.

이 영화는 참으로 잔인하다. 물론 관객을 진짜 이 사건을 접하는 사람처럼 만들기 위해 초반 부분 정말 어두운 배경에 오로지 효정과 이중호의 목소리만으로 시작한다. 즉 사건이 진짜 일어났는지 아닌지에 대한 명백한 증거 없이 관객들에게 던져준다는 것이다. 내가 악하기 때문에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보는 중간에 문득문득 떠오른다. 과장되거나 부풀려진 것은 없을까?라는 생각이 무심코 떠오른다. 그리고는 곧바로 나 자신을 자책한다. 나도 효정이라는 노인을 온전히 믿어주지 못하는구나.

감독은 이렇게 관객에게 직접 그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일부러 치매와 관련된 장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만나지 않았다던 이중호와의 만남을 떠올리는 장면까지, 우리는 정말 어둡고 잔인한 일 앞에서 비켜서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정도의 수준까지 낮아진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속에서 밖으로 나아갈 때 비수가 되어 효정이라는 캐릭터를 찌르게 된다. 나도 모르게 2차적인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효정이라는 캐릭터는 끝까지 담담한 듯 보인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효정의 상황에서 담담할 수 없다. 매일 이와 같은 일을 수십 년간 당해도 그 마음의 끝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인의 움직임은 작고 연약하다. 멍이 든 그녀의 얇디얇은 팔처럼 강하지 않다. 수십 년을 살았어도 처음 겪는 끔찍한 고통은 누구나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나 그녀는 빛을 쫓으며 다시금 그 얇은 팔을 움직인다. 그녀는 아직 살아있기에.

제 얘기가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보는 건 살아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후회하는 시간들도 많았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뒷걸음치며 살았습니다 그저 그늘에 숨어잊혀지기를 바라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효정의 마지막 글

살아있기에 그녀는 자신을 보호하며 억울함을 토로한다. 인간에게 누구나 다가오는 늙음이란 것을 온몸으로 맞아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죽음을 앞두어서 자신의 치부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욕할 수도 있음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그녀는 끝없이 이야기한다. 아직 그녀는 살아있기에.

 

영화 내내 우리는 2차 가해를 목격한다. 누구는 안타까운 마음에 또 누구는 본인이 피해를 보는 게 싫어서, 또 다른 누군가는 그저 유희의 하나로. 그 안에서 효정은 고통받는다. 그것도 두 가지 측면으로, 하나는 여성으로서 또 하나는 노인으로써.

고소인이 젊은 여자였으면

그 사람이 구속됐을까요?

옷 잘 입는다고요?

형사님이 보시기엔 제가 어때요?

이 대사에는 두 가지의 모든 괴로움이 담겨있다. 옷을 후줄근하게 입고 다니는 것은 사람들의 모욕을 이끌어낸다. 거기에 노인이라서 명백해 보이는 피해사실에도 젊은 남자와의 객관적인 연관성이 적어 보인다는 이유로 구속영장마저 기각된다. 노인과 여성이라는 이중적인 폭력의 장면들이 계속된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마지막 순간 희망이라는 빛을 보여준다. 죽음이 다가오는 나이에 당한 슬픈 일을 굳이 감추려들지않는다. 다가오는 어둠에 자신마저 숨어버리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온통 어둠으로 가득해져 버리므로, 그녀는 손을 뻗어 햇살을 만진다. 자신에게 보이는 빛들을 거부하지 않는다.

봄볕에 눈물도 찬란하게 빛난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이제 전 어려운 고백을 시작으로

한걸음 한걸음

햇빛으로 나아가보려 합니다

적어도 이 영화는 사회적인 희망이나 제도적인 희망을 말하고 있지 않다. 스스로의 구원은 바로 본인에게 달려있음을 강하게 어필한다. 이것은 스스로에 대한 희망의 발걸음이며 동시에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지옥 같은 세상에 대해 던지는 작은 파문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으로 끝난다. 실제 사건에서는 주변의 조롱과 멸시, 그리고 믿어주지 않고 오히려 2차 가해를 해버리는 주위 사람들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냉혹한 결말을 맺는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 않을 수 없다.

내 몸 하나 살아가기도 바쁜 세상에 우리는 놓여있고 무수한 자극들과 그 스트레스들로 살아간다. 분명 우리는 벼랑 끝에서 위태위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벼랑 끝에서 간신히 매달려있는 사람을 위로하고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을까.

줄에 걸린 해진 양말 한 짝

봄볕에 눈물도 찬란하여라

효정과 그 아픔의 극복을 보여주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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