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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시 리뷰 결말 해석 진리 앞에 선 인간은 무엇을 바라봐야하나

by YB+ 2024.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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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들어가기, 영화 <은교>에서

나의 부모님이나 아는 나이가 많은 지인들이 이 얘기를 듣는다면 다소 기만과 같이 느낄 수 있겠으나 나는 요 며칠간 나이 듦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우스갯소리로 여전히 학생 소리를 듣는 이미 초등학생부터 이 얼굴이었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며칠간 안면마비라는 다소 강력한 이름의 병을 겪으면서 내가 한 살씩 나이를 먹어가는 것을 느꼈다. 어릴 적 천식으로 크게 아팠던 잠깐의 기억을 더듬어본 후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이렇다 할 큰 병으로 앓아본 적이 거의 없다. 무수히 많은 모발과 젊은 날 술 먹고 뻗어 제대로 닦지 못해도 충치 하나 없던 내 치아 그리고 건강은 나의 작은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서른을 맞이하여 걸린 이 생소하지만 상당히 강력한 작용을 한 병을 앓고 나니 이제는 내가 청춘을 넘어 늙어가고 있음을 명확히 느낀다. 더욱 서럽고 아픈 건 그저 ‘늙어가기만’한다는 것이다. 꿈 많던 나는 사라지고 당장 1년을 아니 다음 분기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게으름 속에 보내고 있다는 게 당혹스럽기만 하다. 그렇다고 내가 바랬던 멋진 어른의 모습처럼 관대하거나 인정이 깊거나 속이 깊은 것은 근처도 가지 못했기에 더욱 그렇게 느낀다. 앞선 <은교>에서의 명대사처럼 나는 무슨 죄로 인하여 늙어가진 않지만 그게 여실히 느껴지고 무섭다. 특히나 나 혼자가 아닌 가정을 이루고 더 사회적인 위치에 있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느끼게 해 준다. 이창동 감독의 작품 <시>를 리뷰해 본다.

영화 정보

시(Poertry)

드라마/한국/139분

15세 관람가

2010년 개봉

감독: 이창동

주연: 윤정희

줄거리

한강을 끼고 있는 경기도의 어느 작은 도시, 어느 날 강물에 중학교 3학년 여자 학생의 시신이 내려온다. 낡은 서민 아파트에서 이혼한 딸이 낳은 중학교에 다니는 손자와 함께 살아가는 미자. 그녀는 꽃 장식 모자부터 화사한 의상까지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고 호기심도 많은 엉뚱한 캐릭터다. 미자는 어느 날 동네 문화원에서 우연히 '시' 강좌를 수강하게 되며 난생처음으로 시를 쓰게 된다. 시상을 찾기 위해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을 주시하며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는 미자. 지금까지 봐왔던 모든 것들이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아 소녀처럼 설렌다.

그러나 강물에 떠내려온 시신이 자신의 손자와 학교 친구들과의 성폭행으로 인함을 알게 되고 미자의 모든 삶은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한 명의 사람이 죽었음에도 태연히 밥을 먹고 티브이를 보며 깔깔대는 손자의 모습은 그녀가 이해할 수 없고 자신이 맡아 간 변호를 하는 노인이 비아그라를 먹고 마지막으로 남자로 그녀와 관계를 맺고 싶다는 말에 더욱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가난한 그녀에게 남은 건 죽은 어머니에게 주어야 할 위자료 500과 시를 쓰기 위한 노트뿐 과연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영화 시 결말&해석&명대사

미자는 결국 강 회장과의 관계를 맺었던 것을 이용해 500을 받아 위자료로 낸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두 끝난 것처럼 행동하는 다른 아이들의 아버지들을 바라본다. 미자는 손자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준 뒤 경찰에 직접 고발한다. 그리고 다음날 미자의 딸이 집으로 찾아오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미자는 시를 가르쳐준 선생님에게 꽃다발과 자신이 쓴 시 아네스의 기도를 남기고 사라진다 영화의 시점은 시를 읽는 미자에서 난간에 선 강물에 뛰어내린 소녀로 바뀌고 어두운 강물을 비추며 결말을 맺는다.

결말에 대한 간단한 설명으로는 미자는 희진과 똑같은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전에 손자를 직접 경찰에 고발했고 떠나기 전 시를 쓴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결국 가장 옳다고 생각한 길을 걷기로 하고 모든 결정들을 한 번에 쏟아낸 것으로 보인다.

이 결말에 대한 해석을 위해서 처음부터 영화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미자는 순수하고 엉뚱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제목인 <시>를 통해 가장 잘 보인다. 다만 그녀에게 있어 <시>라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어릴 적 쓴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에 시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렇게 그녀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사물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관찰’ 이란건 사물을 외부에서 그저 바라보는 것이다. 그 안에 담긴 본질이나 의미와는 상관없이 그저 외관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때 손자의 범죄 연루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기에 그녀는 ‘관찰’하는것으로는 시를 쓸 수 없음을 느낀다. 손자는 희진이 죽기 전이나 후나 큰 차이가 없다. 본질적으로는 손자가 큰 범죄를 저질렀고 그것은 외적으로 드러나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아이들과 훌라후프를 하며 잘 놀아주고 심지어 주위의 친구들은 그녀를 보면 깍듯이 인사도 한다. 겉으로는 순수하고 어려 보이나 그 안에는 본질적인 죄악이 있음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여전히 시를 쓰지 못한다.

그렇게 그녀는 ‘아름다움’을 찾고 추구한다. 그것은 ‘관찰’하는것보다 훨씬 어렵고 힘들지만 고귀하고 그 자체로 예술적이다. 그녀는 자신이 수발하는 노인에게서 그것을 본다. 노인은 겉으로 보면 늙은 나이에 추잡하고 더러운 성적인 욕망을 마지막으로 풀고 싶어 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그 이전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 이유의 하나이며 마지막 남은 의지이다. 그녀는 그것의 본질을 인정하고 실행하게 도와준다. 물론 이 부분은 의견이 나뉠 수 있으나 나는 미자가 노인이 가진 가장 중요한 본질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는 온몸에 비를 쫄딱 맞고 노인을 찾아가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희진의 어머니를 찾아가며 살구를 줍고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녀가 시를 쓰기 위한 본질을 바라보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이전에는 그녀가 본질을 더 바라보게 만드는것들이 있다. 바로 가해자의 부모와 자신의 손자. 부모들은 오로지 위자료와 해결에만 힘을 쏟는다. 사과나 위로, 그리고 고통의 분담은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하지 않다. 손자도 마찬가지이다. 손자는 애초에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모른다. 즉 사회적 도덕성을 가진 부모들이나 죄책감 자체가 없어 보이는 손자 모두 다 진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게 그녀는 살구에 대한 시를 쓰고 마지막으로 ‘아네스의 노래’를 남긴다. 미자가 결국에 찾은 아름다움 즉 진리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동일시, 또는 본질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껍데기나 사상, 일시적인 생각들은 ‘관찰’과 다를 것이 없다. 그저 보이는 그 순간에만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희진 그 자체가 되려 한다. 그렇기에 ‘아네스의 노래’를 쓰며 희진과 동일시된다. 진정으로 전해야 할 사과와 위로는 본인이 되는 것뿐이기에. 그렇기에 영화에는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지만 그녀 또한 희진과 같은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만이 누군가 책임져야 할 진정한 사과에 가장 가까웠기 때문일까. 그렇게 그녀는 <시>를 남기고 떠나간다.

영화 <시> 명대사

역시 사과는 보는 게 아니라 깎아 먹는 거야

-사과를 보던 미자-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 접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녀들이 사랑한 건 인생 그 자체였을지도-

살구는 스스로 제 몸을 땅에 던진다. 깨어지고 밟힌다. 다음생을 위해

-미자의 시, 그녀의 결말에 대한 복선-

시를 쓰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닙니다. 시를 쓰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어려운 것이죠.

-시인의 말-

피처럼 붉지 않아요? 꽃말이 뭔지 아세요? 방패예요. 우리를 지켜주는 방패

-빨간 것은 고통,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선(진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추상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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