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할지니라
영화 들어가기- 마태복음 18장 22-23절 말씀 베드로가 형제의 죄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는지 주님에게 묻자 하신 말씀
인생은 멀리서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세상의 대부분은 가까이서, 그리고 진중히 쳐다봐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내게는 많은 영화들이 그렇고 25살 이전 다양한 다큐멘터리와 이런저런 문서들을 찾아보며 좋지 않은 감정을 품었던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그러했다.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믿으면 천국 가고 안 믿으면 지옥 간다. 이런 단순하게 이분법적이라고 많이들 비난하는듯하다. 물론 과거의 나도 그렇고
이 작품도 비슷한 관점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뭐든지 더 가까이서, 그리고 진중히 쳐다봐야 그 깊은 의미를 알 수 있듯이 조금 더 깊게 생각하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영화가 나타내고자하는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이면에 있는 더 깊은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드는 작품 <더 웨일>을 리뷰해 본다.

영화 정보
더 웨일(The Whale)
드라마/미국/117분
15세 관람가
2023년 개봉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

영화 더 웨일 시놉시스&예고편
272kg의 거구로 세상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대학 강사 ‘찰리’는 학생들과 만나지도 않고 그저 캠도 켜지 않은 채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는 어느 날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느끼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10대 딸 ‘엘리’를 집으로 초대한다.
죽을 날은 계속해서 가까워오고 매일 자신을 찾아와 에세이 한 편을 완성하면 전 재산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한편 토마스라는 선교사가 자신을 찾아오고 어느덧 집에는 엘리와 자신을 간호해주는 친구 리즈, 그리고 토마스까지 많은 사람들이 드나든다.

엘리를 만나 행복한 찰리, 그러나 그가 죽을날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공격적인 엘리와 자신을 전도하려 하는 토마스, 그리고 찾아온 전 부인 메리까지 상황은 점차 엉망진창이 되고 죽음이 가까워 온 순간 엘리는 다시금 찰리를 찾아오는데..
더 웨일 결말&해석&리뷰-영화 파헤치기
시간이 지나 죽음 앞에 선 찰리 앞에 엘리가 나타나고 엘리는 왜 자신의 에세이를 낙제시키도록 썼냐며 찰리를 몰아붙인다. 하지만 에세이는 엘리가 4년 전 쓴 것이었고 엘리는 그것을 보며 찰리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는다. 찰리는 마지막으로 엘리에게 에세이를 읽어달라고 부탁하고 그녀가 에세이를 읽자 찰리는 맨 처음 그녀와 만나서 엘리가 요구했던 것처럼 스스로 서 일어나고 엘리에게 걸어간다. 에세이를 다 읽는 순간 화면이 밝아지며 영화는 결말을 맺는다.

우선 영화적인 해석으로 들어가 보면 이 작품은 종교에서 벗어나 인간중심적이 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엘리이다. 찰리는 항상 엘리를 보며 말한다. 너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대단하고 아름다운 아이라고. 그리고 그녀가 쓴 에세이는 찰리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읽게 되면 그를 안정시킬 만큼 잘 쓰였고 또 강렬하다. 그녀는 한번 본 것을 모두 기억하는 대단한 인간이다. 거기다가 그녀는 이 작품에서 겉으로는 누구보다 반항적이고 냉소적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아버지에 대한 강한 사랑이 담겨있다. 스스로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겉으로 나타내지 못할 뿐 그녀는 내면 깊숙이 찰리에 대한 강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찰리를 스스로 일어서서 걷게 만들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암시하듯 그를 죽음(평안)에 이르게 만든다. 친한 친구이자 간호사인 리즈도 아니고 그를 구원하겠다며 말하던 토마스도 아닌 찰리에게 항상 공격적이었던 엘리가 그를 평안으로 이끄는 것이다. 몇몇의 해석에서는 찰리와 엘리가 7개의 죄를 지고 있지만 결국은 서로를 사랑함으로 둘 다 안식에 이르기에 반 기독교적이며 인본주의가 강하다고 해석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죄라는 건 씻을 수 없는 게 아니며 사랑은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강한 메시지라는 것이다. 단순히 죄=지옥 믿음=천국이라는 이분법적인 생각은 기독교를 오인하는 해석이기에 이렇게 글을 남긴다.

그리고 영화 자체적으로 보면 찰리를 간호해 주는 리즈를 신에 해당하는 캐릭터로 나온다.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고 어떠한 재물이나 성취를 위해 찰리를 간호하지 않는다. 돈이 없어 그녀를 돕지 않았던 것으로 오해하지만 결국 다시 그를 구하기 위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다시 찰리를 찾아온다. 그저 저 거대한 고래와 같은 몸을 가진 인간을 구해주기 위해 애쓰는 끝없이 주는 사랑을 전하는 캐릭터로 나온다. 하지만 역시 기독교를 비판하는 작품이라 그녀는 오히려 찰리를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역할이 된다. 그녀는 찰리를 살리고 싶어 하여 계속해서 그를 찾아오고 그를 돌보지만 그녀는 매 번 그에게 고칼로리의 음식을 가져다준다. 아마도 <더 웨일>에서는 신이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신이 주는 기적이나 평안, 사랑이라는 선물이 세상을 살아가는 연약한 인간에게는 오히려 그를 살찌워 육에 가둬버리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나 싶다.

찰리는 작품에서 모비딕과 동일시되어 나타난다. 소설 <모비딕>을 제대로 안 봤지만 고래 모비딕은 자신과 고래들을 지키기 위해 배를 침몰시키는 존재이다. 여기서 찰리는 엘리를 어두운 세상에서 구해주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그녀를 도와주려 하는 모비딕과 동일시되는 인물로 등장한다. 엘리가 쓴 에세이에서 나오는 것처럼 아합의 공격으로 모비딕은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없고 그저 동일하게 살아간다. 즉 272kg의 거구의 육체나 동성애, 식탐으로 대표되는 죄에서도 그는 온전히 엘리를 사랑하고 그 사랑이 엘리의 앞으로의 인생을 구하고 결국 찰리마저도 구원하게 됨을 보여주며 사랑이 아닌 사람에 의해 삶을 구원받음에 대해 영화는 표현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이다. 엘리도, 리즈도, 메리도 진정으로 찰리를 사랑하고 찰리도 그녀들을 사랑한다. 오히려 외면과 행동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토마스와 피자배달부 댄에게는 사랑이 없다. 그렇기에 토마스와 댄은 찰리에게 상처를 남기고 오히려 공격적으로 찰리를 대했던 엘리와 리즈, 메리가 찰리를 구원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 의해 구원받았음을 영화는 강조하려 했지만 결국은 그 마음 안에 담긴 사랑이 인간을 구원하게 하는 것이다.
토마스가 선교사로 나와 찰리를 구원하지 못하고 오히려 찰리에게 상처를 주고 대마초를 피우며 폭력적인 엘리가 에세이를 읽으며 찰리를 구원하는 것도 누군가는 기독교보다는 인간이 인간을 위로한다고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사랑임을 한번 더 말하고 싶다.

영화의 리뷰를 남겨보자면 일단은 정말 잘 만든 작품이다. 의미하는 바가 많고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그리고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될 만큼 브랜든 프레이저의 연기도 뛰어났다. 외국 배우들의 감정연기는 대부분 공감이 안되는 것이 많은데 영화 끝에 가서는 거의 눈물이 날 만큼 대단한 연기를 보여준 듯하다. 다시 영화관을 찾아서 재관람을 하고 싶을 정도의 뛰어난 작품이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코다 리뷰 결말 해석 가족과 음악 그리고 꿈 (0) | 2024.02.16 |
---|---|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리뷰 결말 해석 진하고 깊은 슬픔 (1) | 2024.02.16 |
영화 질식 리뷰 결말 해석 욕망 앞에 선 인간 (1) | 2024.02.16 |
영화 화양연화 리뷰 결말 해석 뜻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는 사랑의 기억 (0) | 2024.02.03 |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리뷰 결말 해석 상상을 자극하는 마음을 담은 명화 (0) | 2024.02.03 |